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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코너/잡지식 창고

다윈의 진화론에 대하여

by Mr.드림 201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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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대하여

 

인간도 결국 모든 생물들과 근본적으로 한 가족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른 많은 학문 영역들은 물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인류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위인 두 사람

 


올해 2009년으로부터 200년 전인 1809년은 인류 역사상 참으로 대단한 해였다.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이 사망하고 멘델스존이 탄생한 해이다.

<우게쓰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본의 설화작가 우에다 아키나리가 우리 곁을 떠나고

<검은 고양이>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내가 은밀하게 좋아하는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1809년은 여느 해 못지 않게 훌륭한 해이기는 하나

'참으로 대단한 해'이어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의아해 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1809년을 특별히 대단한 해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인류 역사의 방향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대표적인 두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과 찰스 다윈이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정치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링컨과 다윈은 분야를 초월하여 인류사에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라는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1809년 2월 12일 같은 날에 태어났다.


링컨은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하도 들어서 잘 아는 대로

미국 켄터키의 통나무 집에서 태어났고 다윈은 대서양 건너 영국의 슈루즈베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50대에 들어서야

이른바 ‘출세’를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다윈이 그 위대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간한 해가

그의 나이 50이 되던 1859년이었고,

링컨은 51세에 제1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생명권의 평등을 일깨우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이 두 사람 중 누가

인류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링컨이 없었더라면 노예해방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상당히 늦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2009년 현재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사건은 벌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권 평등의 거대한 흐름을 불러일으킨 링컨 대통령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윈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생물들이

태초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발생한 지극히 단순한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도 결국 이 세상 모든 다른 생물들과 근본적으로 한 가족이라는 사실처럼

우리를 철저하게 겸허하게 만드는 개념이 또 있을까?

다윈은 우리에게 생명권의 평등을 일깨워준 사상가이다.

링컨과 다윈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준 위대한 인물들이다. 
 

 


다윈 탄생 200년, '종의 기원' 출간 150년, 올해는 '다윈의 해'

 


2009년 올해는 다윈이 탄생한 지 200년, 그리고 그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일부러 나이 쉰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탄생과 대표 저서의 출간이 이처럼 의미 있는 숫자로 묶이는 바람에

전 세계 곳곳에서 이른바 ‘다윈의 해’를 기념하는 온갖 행사와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나도 이 같은 잔치에 동참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다윈의 이론에 가장 정통한 중진 학자들을 한데 모아 ‘다윈 포럼’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다윈의 대표 저서 세 권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Emotions in Man and Animals)>

 새로 번역하고 있다. 조만간 이 책들이 차례로 출간되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다원 연구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번역서들에 덧붙여 나는 네이버에서 새롭게 마련한 이 코너를 통하여

다윈의 이론과 사상을 보다 쉬운 언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가능하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윈의 해' 행사에도 참가하여

생생한 현장 소식도 전하고 세계적인 다윈 석학들과의 대담을 통하여

다윈 연구의 현주소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 참에 인간 다윈과 그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함께 짚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주변에는 다윈을 그저 자연선택론(theory of natural selection)에 입각하여

진화적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영국의 한 생물학자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가 사상가로서 우리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윈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지난 밀레니엄이 끝나가던 즈음

‘1천년, 1천인’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몇몇 언론인들이

학자와 예술가들을 상대로 지난 1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천명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이 책에서 다윈은 갈릴레이와 뉴턴에 이어 전체 7위에 선정된 과학자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설문조사를 한다면 다윈은 과연 몇 위에 오를까?

나는 왠지 그가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처럼 다윈에 대한 우리와 선진국의 인식 차이는 엄청나다.
 

 


150년간의 담금질

 


서양의 2천년 사상사의 기반을 제공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플라톤이다.

흔히 본질주의(essentialism) 또는 예표론(typology)으로 불리는

플라톤의 사상체계에 따르면 이 세상은 영원불변의 완벽한 이데아(idea) 또는 전형(type)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전형으로부터의 변이(variation)는 진리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물의 종들은 영원불변의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금이 은으로 변할 수 없듯이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할 수는 없다.  
 
 이 같은 관념은 훗날 기독교 신학에 의해 더욱 굳건히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된다.

창세기 제1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 우주는 물론

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생물체들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믿음은

생물종의 불변성과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개념이었다.

다윈은 놀랍게도 플라톤이 진리의 불완전한 그림자로 지정한 변이야말로

이 세상에 실존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라는 전혀 새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지극히 쉬운 말로 표현하면 ‘너와 나의 다름’이란,

완벽하지 못하다는 자성의 대상이 아니라, 그로부터 삶의 새로움이 잉태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진화란 한 마디로 변화를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대간에 일어나는 생물체의 형태와 행동의 변화를 뜻한다.

DNA의 구조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형질은 세대를 거치면서

조상의 형질로부터 변화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학문의 세계에서 다윈의 진화론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은 이론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150년간의 담금질로 인해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생명의 의미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일찍이 위대한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른 많은 학문 영역들은 물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감히 이렇게 말하련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훌륭한 학술 이론이 갖춰야 할 속성으로 흔히 단순성(simplicity)과 응용성(robustness),

그리고 직관적 아름다움(intuitive beauty)을 든다.

이론 자체가 너무 복잡하면 우선 활용도가 떨어지고 의미 전달에도 어려움이 많다.

수식으로 표현되는 수학적 이론들이 범하기 쉬운 결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윈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가 편집하고 서문을 쓴 책이 2006년 노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윌슨 교수는 그 책의 제목을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From So Simple a Beginning)’라고 붙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수많은 모습의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니.”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처럼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이렇게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어쩌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So Simple a Beginning, So Simple a Theory’라고 붙였다.

다윈의 진화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우선 간결함이다.
 

 


진화는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

 


게다가 이처럼 간결한 이론이 설명하지 못할 현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놀라움이다.

‘살아 있는 다윈’으로 칭송 받다가 불과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하버드 대학의 마이어(Ernst Mayr) 교수는

우리말로 번역된 당신의 저서 <이것이 생물학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진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신비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다.”

 

진화론은 이제 생물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심리학, 법학 등의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물론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진화심리학, 진화게임이론, 진화윤리학, 다윈의학 등은

모두 다윈이 뿌린 작은 겨자씨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화려한 이파리와 꽃들이다.

 

나는 앞으로 진화론이 키워낸 지식생태계의 다양함을 찬미하고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벗겨갈 것이다.

제가 선장이 되어 2009년의 바다를 헤쳐갈 비글-네이버호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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